얼마 전 롯데백화점에 갔다가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아래층에서 식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세븐일레븐에 들렀습니다. 다음 날에는 롯데마트에서 주문한 상품이 배송됐고, 해외여행을 준비하면서 롯데면세점까지 살펴봤습니다.
하루 이틀 사이에 여러 번 롯데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조금 놀랐습니다. 일부러 롯데만 찾아다닌 것도 아닌데 일상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계열사가 많은 대기업이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롯데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니 사업을 무작정 늘린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에 모이고, 어떤 방식으로 물건을 사고,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를 지켜보며 유통망을 하나씩 연결해 온 결과에 가까웠습니다.
그렇다면 롯데는 어떻게 지금의 거대한 유통기업이 됐을까요? 그 과정을 다섯 가지 전략으로 나눠 살펴봤습니다.

1. 목 좋은 곳을 잡았다
롯데 유통사업의 본격적인 시작은 1979년 문을 연 롯데백화점 본점입니다. 지금이야 대형 백화점과 쇼핑몰이 익숙하지만, 당시 백화점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최신 상품과 새로운 생활문화를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롯데는 서울 소공동이라는 중심 상권을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고 접근하기 좋은 곳에 대형 매장을 세워 짧은 시간 안에 브랜드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백화점을 이용해 보면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매장이 크고 상품이 다양해도 교통이 불편하면 다시 방문하기가 망설여집니다. 반대로 지하철이나 버스로 쉽게 갈 수 있고 주변에 볼거리까지 많으면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한 번쯤 들르게 됩니다.
롯데는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일찍 읽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위치에 백화점을 세운 뒤 호텔과 면세점, 식당 등을 연결하면서 한곳에서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결국 롯데백화점 본점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이후 유통사업을 키워 나가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2.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롯데는 백화점만으로 모든 소비자를 잡을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을 쓰는 순간마다 다른 유통 채널을 배치했습니다.
주말에 여유롭게 쇼핑하고 싶을 때는 백화점이나 아울렛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장을 볼 때는 마트와 슈퍼가 있고, 급하게 필요한 물건은 편의점에서 살 수 있습니다. 여행을 준비할 때는 면세점이 있고, 집 밖으로 나가기 귀찮은 날에는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매장을 이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장소만 달랐을 뿐 결국 같은 롯데 안에서 소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용하는 사람은 서로 다른 회사라고 느낄 수 있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객의 일상 전체가 하나의 유통망으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이 구조는 사업의 위험을 나눠 준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한동안 백화점 방문이 줄어도 편의점이나 온라인 사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롯데가 유통 제국으로 불리는 이유는 매장이 많아서라기보다 소비자의 생활 곳곳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 오래 머물게 했다
예전에는 백화점에 갈 때 무엇을 살지 먼저 정하고 갔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릅니다. 특별히 살 물건이 없어도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보기 위해 쇼핑몰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는 약속 장소로 대형 쇼핑몰을 자주 선택합니다. 날씨 걱정 없이 식사와 쇼핑을 해결할 수 있고, 카페나 영화관도 가까이 있어 이동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잠깐 들를 생각으로 갔다가 예상보다 오래 머문 적도 많았습니다.
롯데는 백화점과 쇼핑몰에 식당, 카페, 영화관, 호텔, 문화시설을 결합했습니다. 고객이 물건만 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만든 것입니다.
사람이 오래 머무르면 소비 기회도 자연스럽게 늘어납니다. 영화를 보러 갔다가 식사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 들르고, 돌아가는 길에 필요한 상품까지 사게 됩니다. 결국 롯데가 판매한 것은 상품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를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과 경험까지 함께 제공한 셈입니다.
4. 인수로 시간을 줄였다
유통사업을 키우려면 매장만 많이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류망과 인력, 거래처, 가맹점, 고객 기반까지 함께 갖춰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만들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롯데는 필요한 경우 기존 회사를 인수해 성장 속도를 높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미니스톱 인수입니다. 이미 운영되고 있던 점포와 물류망을 확보하면서 세븐일레븐 사업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회사를 인수하는 순간 모든 일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후가 더 어렵습니다. 간판을 바꾸고 상품 구성을 조정해야 하며, 가맹점주와 협의하고 전산과 물류 시스템도 하나로 맞춰야 합니다.
이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인수합병은 단순히 돈으로 시간을 사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수한 회사를 기존 사업과 얼마나 자연스럽게 섞어 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롯데 역시 인수를 통해 규모를 키웠지만, 통합 과정까지 제대로 마쳐야 비로소 그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5. 온라인을 연결했다
온라인 쇼핑이 익숙해지면서 저도 마트를 직접 방문하는 횟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무거운 생수나 휴지는 휴대전화로 주문하는 편이 훨씬 편하기 때문입니다. 가격을 비교하고 결제하기까지 몇 분이면 충분하다는 점도 온라인 쇼핑의 큰 장점입니다.
이런 변화는 오프라인 매장이 많은 롯데에 새로운 숙제가 됐습니다. 매장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고객이 계속 찾아오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롯데는 롯데ON을 중심으로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고, 백화점과 마트, 슈퍼 등 여러 계열사의 상품을 온라인에서 연결하려 했습니다. 가까운 매장의 재고를 확인하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을 매장에서 받는 방식도 중요한 전략이 됐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전환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빠른 배송과 편리한 결제에 익숙한 소비자가 많았고, 각 계열사의 서로 다른 상품과 재고 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일도 복잡했습니다.
직접 온라인몰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기업이 얼마나 큰지보다 검색이 편한지, 배송이 빠른지, 재고가 정확한지가 더 중요합니다. 롯데가 오프라인에서 쌓은 힘을 온라인에서도 제대로 활용하려면 이런 기본적인 이용 경험부터 더욱 세밀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롯데의 성장 과정이 모두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대형마트는 온라인 장보기와 새벽배송의 영향을 받고 있고, 편의점은 가까운 거리에 비슷한 매장이 많아 경쟁이 치열합니다. 해외사업 역시 국내에서 성공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 규모가 크다는 점도 때로는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계열사가 많으면 의견을 맞추는 데 시간이 걸리고, 빠르게 바뀌는 소비 흐름에 즉시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롯데의 경쟁력은 매장을 얼마나 더 늘리느냐보다 이미 보유한 매장과 물류, 온라인 서비스를 얼마나 편리하게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핵심은 연결이었다
롯데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사업의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백화점과 마트, 슈퍼, 편의점, 면세점이 소비자의 생활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롯데는 먼저 좋은 위치를 확보했고, 그곳을 중심으로 사업을 넓혔습니다. 고객이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인수를 통해 성장에 필요한 시간을 줄였습니다. 이후에는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상품과 물류를 하나로 연결하려 했습니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온라인 경쟁력을 높여야 하고, 계열사 사이의 복잡한 구조도 효율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롯데가 오랜 시간 유통 강자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고객이 일부러 롯데를 찾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만드는 것. 그리고 한 번 방문한 고객이 식사하고, 쇼핑하고, 시간을 보내며 다시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 롯데가 만든 가장 강력한 자산은 수많은 점포가 아니라 바로 이 연결의 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