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사과 줄이기 경험 계기, 순간, 변화, 느낌에 대해서 공유합니다.
퇴근 후 현관에 들어서며 신발을 벗던 그날,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고 아내와 아이들이 평소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온기 속에서도 제 마음 한쪽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거실에 앉으니 아내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일 있었냐고.
그 질문이 이상하게 마음속을 두드렸습니다.
하루를 떠올려보니 별일 아닌 순간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큰딸에게 가볍게 부탁하면서도, 둘째아들의 질문에 답하다 잠깐 멈칫했을 때도, 심지어 막내딸이 흘린 장난감을 제가 밟았을 때조차 저부터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내의 질문은 마치 숨겨 놓았던 문제를 꺼내놓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계기
되돌아보니 이런 말버릇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굳어져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도 복도를 지나가다 누군가가 서류를 떨어뜨리면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먼저 사과가 튀어나왔고, 점심시간 식당에서 누군가 제 앞을 지나갈 때에도 제 입에서는 자동으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면서 하루 끝에는 괜히 제가 계속 작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남곤 했습니다.
집에서도 비슷했습니다.
큰딸이 제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으면 오히려 제가 먼저 미안하다고 했고, 둘째아들의 준비물을 챙기다가 실수라도 하면 필요 이상으로 사과하곤 했습니다.
아내는 그 모습을 여러 번 보며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너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그 말이 떠오르며, 이건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불안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심리학회가 2021년에 발표한 자료에서도 필요 이상의 사과가 자기효능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언급되어 있었는데, 그 문장이 그제야 제대로 와닿았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이런 행동이 예의가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연구 내용을 보면 그런 해석은 중심이 조금 빗나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별생각 없이 넘겼던 문제였지만, 이 날을 계기로 제대로 마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순간
다음 날부터 저는 아주 작은 순간이라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회사 복도에서 동료가 서류를 떨어뜨리는 장면을 보던 순간, 제 입은 이미 미안하다는 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잠깐 멈춰 섰습니다.
정말 내가 사과해야 하는 상황인가,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 질문 하나로 마음이 느려졌고, 그 사이 저는 사과 대신 괜찮냐고 묻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할 만큼 낯설었지만, 오히려 몸 안쪽에서 작은 해방감 같은 것이 일었습니다.
지하철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급히 지나가며 제 앞을 스쳤을 때, 예전 같으면 먼저 사과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한 박자 늦춘 덕분에 사과 대신 자연스럽게 몸을 비켜서며 상황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 발표한 정신건강 실태 보고서에서도 자기 경계를 지키는 행동이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되어 있었는데, 그 문장을 떠올리며 괜히 혼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렇게 작은 순간들이 모이며 제가 바꾸고 싶은 지점이 어디인지 선명해졌습니다.
변화
며칠 동안 이런 시도를 이어가자 마음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전에는 누군가 조금만 불편해 보이면 그 원인이 모두 저 때문인 것처럼 느껴져 불필요하게 사과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틈에서 상황을 분명하게 바라볼 힘이 생겼습니다.
누군가의 감정을 존중하되, 내 감정이 줄어들지 않는 지점을 찾게 된 셈입니다.
가정에서도 변화는 분명했습니다.
막내딸이 장난감을 떨어뜨렸을 때 저는 예전처럼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 순간 아내가 옆에서 살짝 웃었는데, 그 웃음만으로도 제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큰딸도 아빠 요즘 왜 이렇게 여유 있어 보이냐고 묻던 날이 있었는데, 그 말이 스스로의 변화를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서 마음의 중심이 제자리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감각을 얻었습니다.
느낌
지금 돌아보면 불필요한 사과를 줄이는 일은 단순히 말 하나를 고치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제 안에서 흐트러져 있던 경계가 다시 세워지는 과정이었고, 제 마음이 제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무조건 사과하지 않는다고 해서 관계가 어색해지는 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필요한 순간에 더 정확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상대 역시 제 마음을 더 곧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를 과도하게 낮추지 않자 일상의 작은 장면들도 훨씬 편안하게 다가왔습니다.
요즘 저는 사과할 이유가 없는 순간에는 웃으며 넘어가거나 자연스럽게 상황을 정리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 선택들이 쌓이면서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제 삶의 속도도 한층 부드러워졌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유 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시나요
그 말이 정말 필요한 순간이었는지, 아니면 익숙해서 나온 말이었는지 기억나는 때가 있으신가요
스스로에게 한번 조용히 묻게 되면 새로운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